늘 그래왔지만, 오늘 역시 조금 민감한 내용의 글을 싸질러 볼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가지는 '중소기업 몇 년 다니다 중견, 대기업으로 이직하면 돼'라는 생각,
이게 제가 오늘 다뤄볼 주제입니다.
본문을 시작함에 앞서, 이번 이야기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며,
또한 저희 회사의 이야기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제가 겪은 특수한 케이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회사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오늘 게재하는 이 글로는 제발 욕 좀 안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말하는 이직의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직은 크고 작은 사고를 터트리며 그 조직에 적응 못해서 회사를 옮겨 다니는 이들의
사례가 아니라 꾸준하게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회사의 급을 올려나간 모범 케이스에 해당한다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이직 테크트리의 단점
1. 이직을 하면 할수록 떨어지는 값어치
작은 회사라도 일단 들어가면 그 사람의 값어치는 그 회사에 맞춰 하락됩니다.
제 때 퇴사하고, 큰 기업의 중고 신입으로 가는 케이스가 아니라면 말이죠.
이미 중소기업에 다니던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연식은 계속 올라가는데, 연봉 경쟁력은 또래에 비해 계속 떨어지죠.
생각한 것 보다 경력이나 경험이 크게 도움되지도 않습니다.
신입기간은 동안 선배 뒤치닥거리만 하느라 내 이름 걸고 마무리한 프로젝트도 없죠,
제대로 된 사수도 없다보니 주먹구구 달려오느라, 일에 대한 정확한 프로세스도 못배웠습니다.
대리 달고나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질 않더라구요.
중소기업에 다니던 사람이라는 꼬리표도 상당히 무섭습니다.
이직을 하고자 할때 회사 선택의 폭이 절대적으로 줄어듭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의 업무 중요도가 낮은 외주업무만 맡아왔던 탓에
중견, 대기업이 원하는 포지션, 업무역량은 갖추지 못했거든요.
저도 그렇고, 주변에 저와 같은 테크트리를 탔던 이들 중, 메뚜기족이 아닌 사람이 없네요.
아무리 둘러봐도 한번에 좋은 회사로 점프하는 경우는 많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이직에 이직을 반복하며 조금씩 성장하죠.
그런데 이런 테크트리는 결국 자신의 이력서를 더럽히게 되고, 평균 재직 기간을 줄여버립니다.
결국 더 좋은 조건으로 가려는 노력이 자신을 가벼운 사람으로 보여지게 하는 계기가 되는 거죠.
씁쓸한 딜레마죠.
2. 정통성의 부재, 승진의 제약
이게 가장 무섭습니다. 비록 이직을 통해 좋은 회사로 자리를 잡게 된다고 해도,
누구나 인정할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승진에 제약이 걸립니다.
생각보다, 오래된 기업, 큰 규모의 기업에서는 출신성분이 되게 중요하더라구요.
일반적인 수순을 밟아 성장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죠.
공채가 아니라는 이유로, 경력직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밀리고, 자기보다 낮은 직급의 팀장 밑에서 빛을 못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채가 올라갈 수 있는 자리와, 경력직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명확히 갈려져 있습니다.
물론 안 그런 회사도 있습니다. 저희 회사는 그렇더라구요. 저희 회사는...
3. 히스토리의 부재로 인한 리스크
새로운 경력자가 가장 난감한 부분이 이 히스토리 파악일 겁니다.
경력직은 기업, 조직, 업무의 히스토리에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이 일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고, 이 사람은 왜 여기에 있나.
이런 히스토리는 직장생활에 있어 중요한 자산입니다.
사소하게는 파일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이 일의 담당자는 누구인지,
이 업무의 유관 부서와 관련 업체는 어디인지.
이걸 알아가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고,
이 일이 반복되면 조직에 적응 못하고 귀찮은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우리 회사 온게 언젠데 이걸 아직도 몰라요?' 대충 감이 오시나요?
히스토리를 모르면 업무의 진척도 느릴 뿐 더러, 인간관계에 치명적인 실수도 범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이 업무 누가 이딴식으로 처리했나요?' 라고 불평했는데
주변 직원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거 팀장님이 처리하신 건데...'
이래 버리면 진짜 답이 없어지거든요.
거기에 멋모르고 어설픈 라인에 올라탈 수도 있고,
옛날에 진행하다 어떠한 이유로 중단된 일을 다시 건드리는 경우도 있겠죠.
문제는 그런 히스토리를 경력자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은 드물다는 겁니다.
자기 할 것도 바쁜데, 괜히 오지랖 피는 것 같아서...
4. 생각 그 이상으로 힘든 이직
생각했던 것 보다 실무가 바쁩니다. 이미 난 다니고 있는 회사가 있습니다.
일하면서 이직? 업무로 피곤한 상태에서 이직 준비를 하는 것은 생각 그 이상으로 힘듭니다.
내가 원하는 기업의 공고도 제때 보기 힘들고, 스터디, 면접준비도 힘듭니다.
면접일도 맞추기 힘듭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눌러 앉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직의 그림이 내가 생각했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직을 하면 할 수록 인생이 꼬인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이직을 통해 더 좋은 회사로 못가고 그 업계 안에서 지박령처럼 돌고 도는 경우가 무수히 많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이 업계랑 나랑 업무가 안맞다고 판단을 하고 바로 빠져나왔지만
생판 다른 업계 회사에서는 거절당하고, 기존에 일했던 업계에서만 콜하는 상황이 오더라구요.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또 그쪽으로 휩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지금도 처음 발을 디딘 그 업계에서 전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느꼈던 이런 저런 넋두리를 한번 옮겨봤습니다.
공감 못하시는 분들도 있고, 또 인정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겠죠.
판단은 자유입니다.
중소기업이나, 이직 테크트리에 대해 폄하할 의도도 아니었고,
일반화로 오해할 만한 소지는 최대한 배제하고 적었습니다.
그냥 제가 이런 테크트리를 타면서 느꼈던 한계라던지 애로사항을 적은 것일 뿐이니,
그저 참고하면 좋을 사례 정도로만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